DIR EN GREY 담론. 음 악 이 야 기

개인적으로 디르앙그레이(이하 디르)의 팬이 된지도 얼추 10년이 다 되었다. 그 풋풋하고 뜨거움 가득했던 시절에 처음 이들을 접했을때의 느낌은, 이제와서는 흐뭇함과 함께 동경이랑은 좀 다른 경외심이 섞인 감정이 되어 그들의 행보를 꾸준히 지켜보게한다.

시절이 그만큼이나 지나왔건만, 그다지 변하지않은 작금의 현실과 음지의 마이너한 취향을 가진 한 사람의 팬에 불과하다는 사실만이, 그저 씁쓸함을 남긴채.. 이 글은 어떤 메세지가 있거나, 결론을 내세울려는 것이 아닌, 그저 좋아하는 밴드에 관한 넋두리에 불과하다.

90년대를 마지막으로 화려하게 불태웠던 락의 불꽃은, 어느덧 새로운 10년이 이제 저물어가는 2009년이 되어서도 회생의 힘을 내지못하고 시들어가고있다. 고대하던 새로운 Rock Icon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으며, 이젠 정말 거의 아무도 락 음악을 찾아들으려하진 않는다. 과거의 향수에 젖어 추억을 되새기기만 하는 음악은 곧 생명력을 잃는다. 음악은 언제나 새로워야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끌어들일수 있어야만 한다. 하기사 비단 락음악뿐만이 아니라 모든 음악씬에 걸친 전반적인 침체지만..

결국엔 세상의 흐름에 무관할 수 없는 것이 대중문화예술이니까. 지독한 경제위기 속에 많은 사람들이 불투명한 현실속에서 고통받는 이런 시기에 어느 누가 여유가 있어서 음악을 찾아들으려하겠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기앞가림조차 벅차다고 느끼는데.. 등따습고 배불러야 비로소 예술타령하는거라고, 당연한 진실이고 현실이다.

이렇듯 다들 사는게 힘들면, 굳이 자기가 즐겨야할것들에 대해 능동적인 태도를 취하기가 귀찮아진다. 먹고살기가 힘들어도, 편하고 쉽게 소비할만한 다양한 컨텐츠가 쏟아지는 세상 속에서 '굳이 찾아먹어야되나?' 생각을 하게되고, 이윽고, 보이는대로 그냥 이것저것 줏어먹게 된다. 그러다 보면 전에 일부러 찾아먹던것도 잊혀지고 하는거지. 나는 이게 우리나라에서 락음악씬이 점점 협소해지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더군다가 애초에 찾아먹던 메뉴가 종류가 많지않았다.

어쨌든 사설이 길었는데, 이렇듯 어려운 세상 속에서 밝고 희망찬 느낌이어도 될까말까한 판국에, 디르앙그레이는 뭐랄까. 참 희한한 놈들이다.

바로 이 횽들.


예전 90년대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비주얼락이라 불리는 일본밴드들이 많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우리나라에서). 허나 이미 시망한 이 부류는 이제와서는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다.

90년대말의 일본내 밴드붐 속에서 데뷔한 디르는 굉장히 빠른 시간안에 스타덤에 오르게되는데(엑스재펜의 요시키가 데뷔앨범을 프로듀스해줬다던지), 뭐 그냥 이때는 사실 평범한 제이락풍의 음악에, 과격하고 기괴한, 엽기적인 비주얼 이미지를 가진 듣보잡 밴드에 불과했다. 여러모로 완성되지못한 미숙한 구석이 많았지만, 그 당시부터 멤버 개개인에 대한 인기는 높아서 자신들만의 확고한 팬층을 구축하게 된다. 그나마 멜로디메이킹에 매력을 느껴서 관심갖게 됐지만, 마릴린 맨슨풍의 이미지를 흉내내려는, 과격해보이지만 실상 음악은 별로 과격하지못한 그냥 그런 밴드였다. 롱런할 밴드가 되리라고까진 생각할 이유조차 없었고.

그렇게 초창기 [Gauze] [Macabre] [Kisou], 3장의 앨범 이후, 2003년 [Vulgar]를 발표하면서 변화의 조짐을 보여주기 시작하는데, 그 후로 디르는 다양한 헤비뮤직의 특징들을 받아들이면서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구축해나가려 애쓴다. 애초에 디르는 테크니컬한 연주력, 보컬의 압도적인 기량을 내세우는 밴드는 못됐고, 장점이라곤 여타 비슷한 밴드들에 비해 좀 더 우월한 송라이팅이 주무기였다.

UK풍이나 아메리칸 스타일을 지향하는 밴드들 안에서도, 일본밴드들의 장점을 꼽자면 송라이팅과 멜로디메이킹을 쉽게 들수 있는데(Ellegarden이라든가 뭐 그 외 다수), 그들과 다르게 이러한 쪽 계열들은 뽕끼가 다분했다. 그것이 장점이라면 장점,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이후 디르는 가요풍의 멜로디로 공략하는 곡에 머무르지않고 [Vulgar, 2003]에서부터 [Withering to death, 2005]까지는 얼터너티브메탈, 뉴메탈적인 접근을 많은 부분 받아들이면서, 변화를 꾀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벌써 데뷔작 [Gauze, 1999]하고는 많이 다른 음악을 선보이게 되었다.

초기에서부터 간헐적으로 나오긴했지만 보컬 kyo의, 얘는 지금 스크리밍을 하는건지 그로울링하는건지 알수없는 괴성이 보컬파트에서 증가하는게 계속 가속화되기도 했다. 이 밴드를 얘기하면서 보컬 kyo에 대한 언급을 따로 안할수가 없는게, 이 보컬리스트를 카리스마로 느낄수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디르에 대해 호의적으로 느낄수있는지 아닌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음악스타일이 계속 변화되었다고는 해도, 밴드가 내세우는 이미지는 [절망, 절규, 인간에 대한 고뇌와 분노, 탄식] 뭐 이정도로 정의할 수 있으며, 이 모습은 변하지 않아왔다. 밴드의 음악성이 급변했던 이유도 보컬을 가장 잘 내보일 수 있는 구성과 곡의 폭발력에 대한 거듭된 실험이었던 것이다.

팬들의 지탄을 받아왔던 원곡의 형태를 찾아볼수없는 라이브상태, 무대 위 가학적이고 과격하지만 많이 봐와서 식상한 자해퍼포먼스, 전달력은 별로 없긴한데 상당히 무거운 가사, 뭘 전달하려고 하는지 이해하기 난해한 역겨운 영상들의 향연인 MV들까지, 디르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의 중심에는 보컬 kyo가 있다.

내가 곧 디르니라.


밴드 음악 스타일에 대한 실험과 변화, 탐구를 거듭하는 동안, 이 밴드는 매우 정력적인 활동을 전개한다. 이 점은 타 밴드들에게도 귀감이 될만한 부분이라고 보여지는데, 물론 결과물에 대한 충분한 수용이 이뤄지는 충성심높은 팬층이 갖춰져있기때문에 가능했겠지만, 쉬지않고 항상 싱글, 앨범 발표와 함께 엄청난 수의 라이브를 감행해왔다.

오피셜사이트에 가보면 자세히 알 수 있는데, 공연횟수만 보더라도 밴드에게 떨어지는 공연수익, 꽤나 될꺼다. 2005년부터는 'Rock am ring' 출연, 해외 쇼케이스 등을 통해 본격적인 해외진출을 시작한다. 어쨌건 일본내에서의 탄탄한 기반이 있으니, 믿을 구석이 있는데 못할게 뭐있나. 라이브 투어를 그렇게나 계속 해나가는걸 보면 대단하다 생각이 든다. [The Marrow of a bone, 2007]에 이르러서는 메탈코어적인 요소들을 다분히 수용한 채, 사운드에 대한 노력도 엿볼수 있다. 그 후, KoRn, Deftones 등 굵직굵직한 밴드들과 같이 투어도 하면서, 일본과 미국,유럽을 넘나드는 활동을 이어간다. 그러면서 최근작 [Uroboros, 2008]를 발표하며 이제는 분명한 어느 수준을 넘은 유니크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재밌는건, 개인적으로 이 앨범은 처음 들었을때 모든 앨범 중 느낌이 가장 별로였는데, 지금에 와서는 가장 후한 평가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


해외진출을 시작했던 2005년 당시의 공연모습


가장 뚜렷한 성공적인 실적을 남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디르앙그레이는 태생적인 한계점을 안고 있기도 하다. 90년대를 관통했던 락스타 마릴린맨슨이 보여줬던 그의 쇼킹함은, 이제는 정말 손쓸수없는 요단강을 건넜을정도로 한물간 것이 되어버렸고, 시대는 벌써 2010년대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디르의 음악과 맞물리는 (맨슨과 상당히 유사한) 과격한 이미지가 과연 어디까지 그들의 유니크함을 뒷받침해 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물론 밴드의 정체성을 상징하기때문에 그 모습이 확 변할리가 없겠지만, 장르적 한계에도 슬슬 부딪히고 있다고 본다. 이견의 소지가 다분하지만, 이들의 음악은 이미 metalcore, alternative metal로 정의할 수 있고, 과연 앞으로 얼마나 더 참신할 수 있는가 하는 이 계열 모든 밴드들의 근원적인 문제에 봉착했다. (개인적으로 이 계열 밴드들의 스펙트럼은 Killswitch Engage가 붐을 일으킨 후 스스로 끝내버렸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디르는 골수 익스트림씬에선 아직까지 인정받지 못한다.(그 협소한 팬덤에서조차) 해외에서의 평가나 일본내에서의 평가야 잘 알길이 없으나, 국내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뭐 그냥 우리나라에선 인지도가 그저 듣보잡에 불과하기때문에 크게 상관은 없다만. ㅋㅋ


Kerrang!지에 실릴 정도로 컸다.


적어도 네이버에 검색하면 블로그등에서 멤버미모찬양이라든가, 지식인에 얘네는 여성그룹인가요? 등의 글만 주르륵 나오는게 예나 지금이나...  가련한 영혼의 아해들은 그저 내 가슴을 먹먹하게만 할뿐.

이런 시절도 있었다. 앜ㅋㅋㅋㅋ


전세계적으로 헤비뮤직씬이 그 힘을 잃어가는 가운데, 꾸준히 변화와 성장(!)을 거듭해온 그들에게 아직도 난 애정어린 관심을 갖고 있다. 좋아라하는 헤비밴드들 공연은 얼추 봤지만, 앞으로도 디르만은 일본건너가지 않는 이상 공연보기 힘들것같고..

이 밴드마저 사라지면 과거 영광의 시간을 간직하고 있는 헤뷔락밴드가 정말 거의 없게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해지는구먼.
(하긴 뭐 오아시스도 끝장난 마당에)




덧글

  • enzvil 2011/11/01 23:23 # 삭제 답글

    아아 디르팬으로서 네이버나 구글에 디르검색해보면 비주얼시절 고대자료밖에 안나와서 답답했었는데 좋은글 잘봤습니다. 글 한마디한마디 다 공감이되네요. 제가 디르를 정말 좋아하면서도 어디가 좋은건지 잘 몰랐는데 정확하게 짚어주셨네요 멜로디메이킹이랑 폭발력, 메탈코어 수용..
    지금까진 디르가 음악적으로 발전해가는모습 보여줘서 좋았는데 님말대로 슬슬 한계지 싶어 안타깝습니다. 새 앨범도 우로보로스보다 약간 더 무거워지긴했는데 크게 바뀐점은 못느끼겠고.. 아무튼 좋은글 감사합니다 ^^
  • 유인 2014/12/08 18:12 #

    몇년만에 들러서 답글을 다네요. 개인적으로 11~12년의 활동이 좀 불안불안했습니다만, 이번주에 이제 9집 ARCHE도 나오고 다시 기대중입니다. 선공개된 티저로 봤을땐 또 한번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Withering to Death]가 나왔을때랑 비슷하게 좀 더 멜로디가 부각된 사운드일 것 같습니다.

    13년에 발표한 EP [Unraveling]이 개인적으론 별로였었는데, 신보는 좀 기대를 해보고 있습니다. 한번 더 내한공연을 왔으면 좋겠네요 !
댓글 입력 영역


통계 위젯 (화이트)

00
1
7542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화이트)

4